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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영암] 한국 트로트가요센터카테고리 없음 2022. 3. 28. 09:16
어린 시절 아들 여섯, 딸 하나밖에 없는 가난한 우리 집에서 누나는 부엌에 틀어박혀 있었다.아버지 혼자 벌어온 돈으로 아홉 식구가 먹고살아야 하니 살림이 궁핍해 누나는 결국 국민학교까지 다니며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학교는 못 다녔지만 돈은 벌어야 하기 때문에 해변 마을에서 여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물을 뜨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었다.
노란 그물 끈이 다발에 들어오면 물레에 돌려 공처럼 그물을 만들었더니 동생 나는 그 끈을 대나무로 만든 바늘에 감아 놓았더니 언니는 동료 몇 명과 함께 여러 크기의 그물을 짰다.그때 누나 옆에는 라디오가 항상 있었다.
녹음기도 없던 시절이라 누나는 노래가 나오자 급히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가사를 적었다.그때 들었던 노래가 가수 이미자, 조미미, 문주란 등 스타 가수인 동백공주, 섬마을 선생님, 바다가 육지라면 댄서의 순정 등... 그 노트의 일면을 다 쓰고 나면 뒤집어 가사를 쓸 만큼 당시에는 최고의 트로트 라이브러리였다.
트로트는 언니 옆에서 들으면서 배우고, 한편으로는 대학생 오빠 옆에서 팝송을 들으며 흥얼거렸다.그러나 내 노래 장르는 트로트도 팝송도 따르지 않고 중학생 이후 포크송에 빠져 버렸다.
영암의 기창랜드에 트로트 박물관이 있다기에 찾아가 관람하며 누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마치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을 연상시키는 한국트로트가요센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 가는 우주선을 탄 기분이었다. 거기에 내 사랑하는 언니가 있었다.
넓은 1층에는 1940년대부터 10년마다 2000년대까지 한국 트로트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시대별로 유행했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2층에는 영암이 낳은 한국 최고의 트로트 가수인 하춘화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1940년대 가수들의 얼굴은 낯설지만 음악은 잘 알고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노래다.
버튼을 누르자 대표 가수로 고복수 씨의 프로필이 보인다.그의 고향과 수상 기록, 그리고 음악 활동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며, 대표적인 노래는 타향살이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이 타향살이를 모를 리 없다.살기 힘들면 누구나 부르던 노래 타향살이.
돈벌이를 위해 고향을 떠나 보내는 타향살이에 탁자로 함께 나오는 안주는 '타향살이'였다.당시에는 축음기라는 전축을 통해 이 노래를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르신 그 시절의 노래를 나도 직접 들어보았다. 바늘이 레코드판을 긁는 소리가 들리고 애타게 부르는 황금심씨의 노래가 너무나 그리웠다.
시대가 다시 10년을 달리면 대표적인 가수 현인의 얼굴과 함께 신라의 달밤도 들을 수 있다. 잊었던 당시 가수들의 이름이 똑같아 보인다. 박재홍, 고은봉 씨 등등.60년대의 기라성 같은 가수들은 지금도 음악계 스타들의 모습이다.
이미자, 남일해, 문주란, 조미미, 배호, 최숙자, 오기택, 박재란 등등... 아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이름을... 이름만 들어도 기쁜데 사진과 그들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어서 내 입에서는 노래가 흥얼거린다.그다음 70년대 가수들은 더 기쁘다.남진 나훈아 하충화 송대광 현숙 김상진 현철 주현미 설운도 태진아 김연자 문희옥 등.이 중 몇몇은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80년대에는 트로트가 장르를 바꿔 인기를 끌었다.댄스뮤직, 발라드와 테크노, 힙합 등이 인기를 끌면서 트로트 가수가 사라지는 듯했지만 70년대 스타들의 저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트로트가 영원히 사라지나 했더니 마치 젊은 남성들의 넓던 바지 통이 시대에 따라 좁아지다가 시대가 바뀌면 또 다른 모습으로 넓은 통으로 변해가듯 장윤정 박현빈 등 또 다른 트로트 스타들이 나타나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시간은 흐르고 문화는 바뀌고 구시대의 산물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나 사랑을 받은 것이 문화의 힘이다.
전시된 사물들 중 축음기 이후 변화무쌍한 음악을 듣는 Music Player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거쳐온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본다.
한때 LP로 음악을 듣던 나도 녹음테이프가 나온 이후 CD로 더 편해진 뒤, 그것도 진화해서 MP3 같은 음원으로 들어도 여전히 LP를 듣고, 이 음악만큼 따뜻한 음악이 없다며 옛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또한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이다.
2층에는 과거 영암골목 풍경과 함께 영암 가수 하춘화의 60년 가수 활동 일대기가 묘사 전시돼 있다. 그가 입은 무대복과 활동기록, 히트곡, 음반, 팬레터, 공연사진 등이 전시돼 있어 이곳에서 영암 사람들이 대가수를 배출한 곳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거나 음악애호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어 흐뭇하다.
이곳 트로트 가요센터에서는 그렇게 보고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공연을 볼 수 있는 200석 규모의 공연장도 있다.
영암에 가면 대중음악 문화의 살아있는 역사를 볼 수 있다.
주소: 전남 영암군 영양읍 기창랜드로 19-19 전화: 061-470-2803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기창랜드로 19-10